[2021 성동마을 MORE MORE 여름호] 가슴에 돌덩이가 가득한데 어떻게 새벽의 기적이 될 수 있어요 Chapter 5. 잘못된 극복방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29 10:33
조회
66

가슴에 돌덩이가 가득한데 어떻게 새벽의 기적이 될 수 있어요😂


Chapter 5. 잘못된 극복방법


김 태 은(모아모아 1기)
@articleartist.taevely




현타가 왔을 때 잘못된 극복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해요. 경험에 의한 것들이고 이제는 다시 하지 않는 행위들입니다.


예로는 숨어버리는 것, 더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 마지막으로 누구나 저처럼 힘든 것을 참고 있다고 퉁치는 것입니다.



1) 돌연 숨어버리기


일명 ‘잠수’라고 하지요. 돌연 숨어버리면 그 순간에는 잠시 안락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무거운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20대 초반 시절 외부 활동이 저에게도 힘든 적이 있었어요. 중책을 맡을수록 저에게 모여드는 정보는 집중되면서 그만큼 책임감도 높아졌으니까요. 불현 듯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해서 모두에게 이야기 했는데, 가만히 듣던 선배님께서 한 마디 하셨어요. “그럼 너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 그리고 그만둬.” 저는 한 사람일 수 있지만 제가 속한 조직에서는 저도 하나의 역할을 배분하고 있는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사람들과는 다시 만나기가 겸연쩍었습니다. 괜히 저 하나가 분란을 만든 것 같고, 모두가 힘든 순간인데 저만 티를 낸 것 같았거든요. 궁극적으로 잠시나마 편할 수 있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불편함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숨어버리는 것은 자칫 타인에게 민폐가 될 수 있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을 것인데, 그 역할을 못하게 됨으로써 생산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일방적으로 숨어버리면 함께 했던 모두에게 또 다른 짐을 주는 것이 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기존의 팀원들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시 다가오지 않는 한 먼저 다가가기는 점점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겪어봐서 그런지, 힘들어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려 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더라구요.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님의 말씀처럼, 아픈 사람을 알아 보는건, 제가 더 아파봤기 때문일까요.

 

2) 더 이를 악물고 버티기


어릴 적에는 ‘참아야 한다’ 혹은 ‘정신력’을 매우 강요받았던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강한자만이 살아남던 80년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정신력으로 버텨냈다고 하더라도 그 후 충분한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참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고무줄이 끊어지듯 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거나 정말 일에 지쳐 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다보면 매사 의욕이 낮아지고 무엇보다 삶 전체의 ‘재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재미라는 요소는 학문적으로도 특정 행동을 지속 하게 하는 변수로 활용이 되고, 이근후 박사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책의 메시지처럼 심리학자들도 삶을 윤택하게 하는 요인으로 설명하기도 하지요. 아마 사회초년생부터 이를 악물고 몇 년 버텼으면 ‘서른 즈음에’ 이른바 인생의 ‘노잼시기’를 맞이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한 몫 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삶 전체에 재미가 없을 것인데, 어떻게 업무에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의 효율이 높아지고, 더군다나 삶에서 행복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가슴에 돌덩이가 가득한 순간에는 감정이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아주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장 모든 것이 불편하게 다가오니까 상대방에게 친절한 태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까칠’ 혹은 ‘당당함’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고 던지는 ‘솔직함’을 빙자한 공격은 지능의 낮음 혹은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례가 은연중에 표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응어리를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쉽게 화를 내면 자신의 기분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 또한 다치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궁극적으로 부정적인 순환 구조가 생겨서 다른 스트레스의 근원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모르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이 악물고 버티다가 큰 실수를 한다거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가장 괴로운 것은 당사자 본인이겠지만, 다음으로 힘든 것은 주변 팀과 동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누구나 나처럼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입니다. ‘누구나 그러고 살아’, ‘너만 특별한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을 만큼 참다가 이야기 한 것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남들’과 참 많이 비교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남들’은 언제나 바른 모습, 성실한 태도를 가진 검열관 같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성장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마다 상처가 되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적 배웠던 ‘역치’가 개인의 경험과 삶의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분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고, 되려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저에게는 송곳처럼 박히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더불어서 ‘당신의 아픔을 이해해요’와 같은 위선적인 말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각자 다른 환경이고 다른 삶의 방식일진대 이해한다는 것은 ‘당신 기분이 어떤지 짐작할 정도입니다’정도로 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엔 저 또한 막연히 위로를 받으려고 했어요. 마치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말이에요. 제가 이해 받을 것을 기대하며 제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내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반응은 요즘 말로 사바사 였습니다. 그 말은 사람마다 힘든 지점과 공감 포인트가 다르다는 점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힘들 때는 ‘지금 힘들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생 많았어’, ‘힘 들었지?’라고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을 본인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타인과 함께 있는 곳에서 이렇게 하면 ‘쟤 이상해’하는 반응을 받을 수 있으니, 혼자 있는 곳에서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네시기를 권합니다. 힘듦을 인지하고 잠을 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등의 휴식을 해야 합니다. 연속된 업무로 부터의 단절이 필요합니다.